머스크 라인(Maersk Line)은 덴마크에 본사를 둔 해운업체다. 머스크는 2002년과 2008년 대규모 구조조정 프로그램 스타라이트(Starlight)와 스트림라인(Streamline)을 통해 조직문화부터 기업 시스템, 프로세스를 변화시켰고, 그 과정에서 구성원들의 대거 교체도 일어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머스크는 성장위주의 기업에서 성과위주의 기업으로 탈바꿈하는 것에 성공했고, 이는 업계에서도 독보적인 수준의 수익률을 내며 성공적인 구조조정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법정관리 절차에 들어가 위기를 맞이한 한진해운이 머스크를 배울 수는 없었을까. 한종길 성결대 동아시아물류학부 교수와 이야기를 나눠봤다.
Q1. 시기적으로 본다면 머스크는 2008년 금융위기 이전 시장 상황이 나빠지기 이전부터 조직 개편을 하고자 했는데, 한진해운의 경우에는 금융위기 발생 이후 대응을 시작한 것처럼 보이는데요. 한진해운이 단순히 시장 악화를 예측하지 못했던 것인가요?
A1. 2008년 금융위기로 인한 세계해운의 어려움을 기회로 삼아 머스크는 2010년 덴마크 수출신용기금에서 5억 2,000만 달러(약 5,500억원)를 지원받는 등 금융권에서 62억 달러를 차입했습니다. 덴마크 정부의 지원 없이는 이를 극복하지 못했을 것이고 시황예측에 대하여 한진이나 머스크나 큰 차이가 없이 모두 실패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Q2. 머스크 같은 경우 두 번의 구조조정 프로그램에 베인앤컴퍼니와 맥킨지, 즉 컨설팅회사가 참여했다고 합니다. 한진해운의 경우, 한진해운이 오늘날까지 이르기까지 시행했던 자체 구조조정 방안에 대한 평가가 궁금합니다.
A2. 한진해운도 컨설팅회사가 참여하는 구조조정프로그램을 실시한 것으로 알고 있고 이미 수 차례에 걸친 자구계획을 실시하였습니다. 한진해운의 경우 대한항공을 대상으로 한 제3자 배정유상증자(2014년 6월) 4천억 원까지 포함하여 2011년부터 약 7천억 원에 달하는 유상증자를 실시했습니다.
2014년 12월에는 만기정산 시 정산차손에 대해서 대한항공이 투자자에게 지급하는 조건으로 2천억 규모 교환사채를 표면이자율 7.7 %에 발행하였습니다. 또한 LNG가 포함된 벌크 전용선 사업부를 한국해운벌크에 약 4,160억 원에 매각하였습니다. 한진해운이 일부 지분을 보유한 후 향후 우선매수청구권 행사조건이며 이후 에이치라인 해운으로 변경되었는데 영업이익의 경우 2015년 기준 약 1,300억 원입니다.
2015년 1월에는 대한항공 자회사인 한진에너지가 보유하고 있던 총 3,198만 3,586주(28.41 %)의 에쓰오일 주식을 사우디 아람코에 매각했으며 매각대금 중 차입금 1조 500억 원을 제외한 나머지 9,330억 원 대부분을 한진해운에 지원했습니다.
2016년에는 ㈜한진과 한진칼에 평택터미널과 신항만에 대한 지분 매각을 비롯해 노선 영업권, 상표권 매각 등으로 2,351억 원을 확보하였으며 법정관리 신청 이후에는 조양호 회장 등의 사재출연으로 약 500억 원과 한진해운 매출채권 담보로 600억 원 등 1,100억 원의 유동성을 마련하였습니다.
그리고 연간 약 1조원에 이르는 용선료 절감을 위해 이스라엘 컨테이너선사 '짐(ZIM)'의 협상에 투입됐던 영국계 법률 사무소 프레시필즈 브룩하우스 데링거(Freshfields Bruckhause Deringer LLP)를 2016년 5월 12일 선임하여 협상을 벌여왔으나 무위에 그쳤습니다.
이상에서 보듯이 한진해운에 대한 구조조정과 자구책은 실시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대주주인 대한항공을 비롯한 그룹계열사가 모두 할만한 대책은 다 실시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정부의 강압적인 지원강요가 없이도 한진그룹 차원의 노력은 다 했다고 봐야 합니다. 그러나 시황 회복이 더딘 상태에서 한진해운에 대한 한진그룹만의 자구노력은 정부의 지원으로 살아난 대부분의 외국정기선사들과 비교하면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Q3. 머스크와 한진해운의 지배구조는 모두 창립자의 후손이나 친인척이 지배하고 있는 구조입니다. 머스크의 조직 구성과 조직 문화를 변화시키자는 시도가 경영진으로부터 출발했고,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와 비교해 한진해운의 이번 구조조정 위기를 “경영진 오너십의 부재”로 돌리는 의견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A3. 머스크의 지배구조는 약 40 %를 창업가문이 보유, 안정주주 형성하고 있으나 이사 12명(과반수는 사외)으로 그룹전체의 사업전략을 감독, 자금배분을 결정하는데 창업가문 2명이 이사로 재적하고 있습니다. 최고경영진(Executive Board)이 일일 집행을 관리(본사의 CEO, CFO와 주요 사업회사 CEO 4명, 계 6명으로 구성), 차년도 투자계획을 Board of Directors에 제출하여 승인을 받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습니다. 창업가문이 실제로 경영에 관여하기 보다는 전문가를 적극 활용하고 있으며 해기사를 비롯한 해운전문가 경영을 지휘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진해운과의 차이를 찾아야 할 것입니다.
한진해운의 최은영 회장의 경우 경영에 전혀 참여하지 않다가 남편인 조수호 전 한진해운 회장이 2006년 세상을 뜨자 45세의 나이로 경영책임자가 되어 2014년까지 한진해운을 이끌었습니다. 최 회장을 보좌한 전문경영인은 경기고와 연세대 경제학과를 나와 미국 노스이스턴 대학에서 MBA 학위를 받은 씨티은행 출신의 김영민 전 사장입니다. 그는 해운을 마치 금융회사 다루듯 취급했기 때문에 시황에 제때 대처하지 못했습니다. 김 전 사장의 재임기간동안 한진해운의 선박은 거의 두 배로 증가했으며 단기차입금이 급증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3년 말 퇴직금으로 당시 보수의 5배 수준인 20억 원을 받아 논란의 중심에 섰지요.
최은영 회장은 한진해운의 경영권을 확고히 다지기 위한 수단으로 2009년 인적분할을 통해 당시 유행하던 지주회사를 만들었는데 한진해운 홀딩스는 도대체 왜 만들었는지 상당히 의아합니다. 결국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인적분할 된 유수홀딩스의 자본총계 282,669백만 원(2016년 6월 30일 기준)은 한진해운에 귀속되어야 마땅합니다.
특정 대학 출신을 편애하는 건 올바른 경영방법이 아닙니다. 더구나 특정 대학 출신이 능력이 탁월하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해운회사가 지나치게 일반기업 또는 공무원 같은 조직으로 변해도 문제가 있습니다. 그 증거는 해운이라는 전문분야를 공부하고 선박이라는 현장을 체험한 해양대학 출신들의 철저한 배제입니다.
한진해운의 경우 2016년 6월 30일 현재 해양대 출신은 7명의 등기임원 중 한 명도 없고 31명의 미등기임원 중 해사담당 상무, 상무보직의 TTI/LLC 대표, 해사기술팀장, 운항팀장 등 4명에 불과합니다. 특히 해사기술에 대한 상당한 전문기술이 필요한 전무직의 해사본부장조차 서울대학교 항공공학과 출신이 담당하여 한마디로 배가 하늘로 가고 있습니다.
한진해운의 경우 회사생존에 필요한 용선료 절감에 대한 진지한 접근이 부족했습니다. 협상팀은 지난 4월에야 6명으로 꾸려졌고 이마저도 고액 수임료 논란이 있는 영국 로펌의 변호사에게 회사의 미래를 맡겨둘 것이 아니라 담당부서에서 선제적으로 회사의 어려움과 비전을 제시하고 선주들을 설득하는 능동적인 자세가 필요했습니다. 변호사의 역할은 법률적인 자문에 한정되어야 됩니다. 과연 외국 변호사가 자기 일처럼 열심히 협상에 임할까요? 그리고 법률적인 접근 보다는 상사적인 접근이 문제해결에 훨씬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Q4. 혹자는 “머스크는 정부의 보조금을 받지 않는 기업이고, 정부 보조금이나 다른 형태로 정부의 도움을 받는 다른 해운사들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변해야만 했다”라고 말합니다. 정부 보조금이 오히려 기업의 혁신 시도를 막았다는 의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A4. 머스크도 필요에 따라서 덴마크 정부와 유기적으로 협조하면서 지원을 받아서 위기를 극복하였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머스크에 대한 정부보조금은 덴마크정부뿐만 아니라 한국정부의 선박수출지원보조도 받았다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한진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머스크에 대한 지원보다 액수면에서도 지원내용면에서 해악적인 요소가 강하다는 측면에서 기업혁신시도를 막았다고 할 것입니다. 구조조정의 원래 취지는 부실기업이나 비능률적인 조직을 성장성 있고 능률적인 사업구조로 변경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최근의 구조조정은 우량사업부문을 매각하여 생긴 자금으로 부실 사업부문을 존속하게 하는 엉터리 구조조정이었습니다.
Q5. 현재 법원에서는 한진해운의 ‘파산’까지 언급한 상태입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키운 해운기업이 마비되고 이에 따른 물류대란에 대해 무책임하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실제로 2008년 이후 정부가 내세웠던 ‘선박금융 및 해양플랜트 지원 확대안’, ‘회사채 시장 정상화 정책’, ‘해양금융종합센터’ 등 방안이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A5.예를 들어 지원의 전제조건인 부채비율 200 %를 맞추기 위하여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장기간의 해운불황에 따른 유동성 악화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지켜야 하는 알짜 사업부문인 자동차, LNG선 등의 장기수송계약 운송부문, 컨테이너터미널 등 핵심 영업자산을 매각하는 등 강도 높은 자구노력을 통해 수조원의 유동성을 자체적으로 마련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자구노력은 회사채를 연장하는 조건으로 차입금 일부상환과 고금리 이자지급에 상당부분 지출되는 바람에 유동성 확보에 한계가 있었습니다. 특히 회사채시장 안정화방안을 위해 도입된 회사채신속인수제도(P-CBO)는 현대상선의 경우 10 %대가 넘는 고금리 및 단기대여로 오히려 지급이자만 늘어났습니다.
Q6. 해운업이 국가기간산업인 점에는 이견이 없는 듯합니다. 머스크 역시 유동성 위기에 덴마크 정부로부터 금융지원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국 해운산업에 정부가 어느 방면에서, 어떤 방식으로, 얼마만큼 관여해야 하는 것이 효율적인지 궁금합니다.
A6. 정부의 해운산업에 대한 지원은 헤운산업을 논할 때 1) 운송수지와 같은 무역외 수지 향상, 2) 조선산업 등과의 연관산업 발전, 3) 관련산업의 고용효과 등과 같은 ‘경제적 효과’와 1) 평상시 상선대(Merchant Fleet)를 확보해 둠으로써 비상시 선박과 선원을 전시물자 수송과 같은 상시전력으로 활용할 수 있는 예비전력의 효과, 2) 수송망으로서의 기간산업 유지, 3) 운송의 중요한 의미로서의 공공재의 기능 등과 같은 ‘경제외적 효과’ 또한 그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경제외적 효과 중 특히 ‘예비전력’은 육군, 해군, 공군 다음의 제 4군으로서 상선대의 중요성은 미국, 영국, 일본 등의 선진국에서도 진작부터 깨달아 적절한 자국 상선대를 유지하기 위해 자국선박에 대한 각종 보조금과 보호정책을 실시하였습니다. 만약 전쟁 발생 시 외국 선원과 선박이 침몰의 위험성이 존재하는 우리나라 항구에 기항하려고 할까요? 혹시 기항한다고 해도 막대한 프리미엄을 요구하고 이는 경제적 손실로 다가올 것입니다.
해운산업은 1조 달러의 무역 대국을 뒷받침하는 기반산업으로서 철강, 전력, 조선, 에너지산업과 비교해도 그 중요성이 절대 뒤지지 않습니다. 순진한 경제적 논리로 사유재(private goods)의 가장 큰 특징인 배제원칙(exclusion principle; 재화 또는 서비스에 대한 대가를 지불한 사람만 소비할 수 있고 지불하지 않은 사람은 소비에서 배제되는 원칙)과 경쟁원칙을 외항해운산업에 단순히 적용하는 건 철도, 도로와 연안해운 등과 비교해도 형평성이 어긋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