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류 공동화’는 어디에든 있다

작성자 : 김철민 비욘드엑스 대표 / 엄지용 커넥터스 대표 2022.10.23 게시

평소와도 같은 어느 날의 일이다. 네이버쇼핑을 통해 택배 알림톡이 도착했다. 얼마 전 쇼핑몰을 운영하는 지인의 부탁으로 구매한 ‘야채접시’가 롯데택배를 통해 오늘 배송된다는 내용이었다. 늘상 그렇듯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언제고 그랬듯 자연스럽게 우리 아파트 경비실, 혹은 집 문 앞에 택배상자를 두고 가겠지.

그런데 그날은 평소와 달랐다. 일상처럼 택배 알림톡이 왔고, 일상처럼 택배기사로부터 부재중을 묻는 전화가 온 것까지는 같았다. 그런데 배송 시간을 안내하는 기사님의 멘트가 이상하다. “안녕하세요, 로젠택밴데요. 오늘 택배 배송 가는데 집에 계신가요?”

난 분명히 롯데택배를 통해 배송 알림을 받았는데! 나에게 연락 온 사람은 롯데 택배기사가 아닌 로젠 택배기사였다. 귀를 의심하며 혹시나 내가 잊어버린 온라인 주문이 있나 찾아봤다. 당장 내가 온라인에서 주문한 상품은 ‘물빠짐 야채접시’ 하나뿐이었다.

나는 사건의 진상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먼저 쇼핑몰을 운영하는 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님, 롯데택배 대리점이랑 계약한 거 아니였어요? 저번에 주문한 접시 오늘 배송된다고 연락이 왔는데 롯데택배가 아니라 로젠 택배기사한테 전화가 왔어요”

지인도 놀란 눈치였다. 그는 롯데택배 대리점과 계약을 한 것이 맞고 딱히 계약을 변경하지도 않았다고 했다. 로젠택배가 롯데택배 대신 배송을 해준다는 이야기는 그조차도 금시초문이었다. 지인도 궁금증이 동했나 보다. “나도 왜 그런지 궁금하네. 롯데택배 대리점에 전화해서 알아보고 연락줄게”
●‘택배판 품앗이’를 만났다

그렇게 돌아온 답은 이랬다. 서로 다른 업체 소속으로 일하고 있는 택배기사들이 ‘물량 품앗이’를 한다고 했다. 롯데택배 기사가 어쩌다 배송 효율성이 떨어지는 물량을, 그러니까 담당 지역과는 동떨어진 곳에 있는 배송지를 택배업체 본사로부터 할당 받을 수 있다. 이럴 때 원래 해당 지역의 배송을 담당하는 다른 택배업체 친한 배송기사에게 연락하여 물량을 넘긴다고 했다.

예를 들어서 인천 계양구 배송을 담당하는 기사가 어쩌다가 인천 서구 물량까지 받았다고 치자. 이 택배기사가 몇 안 되는 서구 물량을 처리하기 위해서 동선을 우회한다면 배송 처리 건당 시간이 늘어나고, 시간당 수익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 때 효율이 떨어지는 물량을 연수구 물량을 처리하는 다른 택배기사에게 맡긴다는 것이다. 대신 나중에 물량을 받은 친한 택배기사가 어쩌다 계양구 물량을 할당 받는다면 이런 물량은 역으로 공유 받기도 한다.

한국에서 택배기사는 대부분 ‘개인 사업자’나 다름없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로 분류된다. 택배기사의 수입은 본사의 허브앤스포크 시스템을 통해 지역 대리점으로 할당되는 물량을 배송하여 나오는 건당 수수료와 택배기사가 택배가 필요한 지역 화주사에 집화 영업을 해서 벌어드리는 건당 수수료로 나뉜다. 

뭐가 됐든 ‘건당’ 돈을 받기 때문에 택배기사는 일한 만큼 돈을 번다. 고정급을 받는 이들이 아니다. 그렇기에 택배기사들은 배송을 함에 있어 한정된 시간 안에 최대한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선택을 한다.

롯데택배에서 알림톡을 받았는데 로젠 택배기사가 배송을 온 배경에는 이런 정황이 숨어있다. 물량을 공유하는 롯데와 로젠 택배기사 모두 효율성 측면에서 같은 돈을 벌더라도 좀 더 빠르게, 혹은 같은 시간을 투자하더라도 좀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선택을 했다. 최대한 배송 밀도를 좁히고, 배송지를 가깝게 배치하도록 했다. 택배기사들의 ‘공유 물류’다.
●‘공유망’이 만드는 효용

택배차보다는 조금은 거대한 5톤 이상 중대형 화물운송 업계에선 이런 일이 없을까. 예측했겠지만 당연하게도 있다. 화물차주들은 알음알음 서로 친한 차주끼리 모여 ‘네이버 밴드’로 커뮤니티를 만든다. 이 커뮤니티서 그들은 서로 당장 쳐내기 어려운 주문들을 친한 차주들에게 공유한다. 여력이 있는 누군가가 그 주문을 대신 수행한다. 차주들은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차주를 ‘대장기사’라고 부른다. 그들 나름대로 물량을 주고받는 ‘품앗이’ 망을 형성했다.

택배차보다 조금은 작은 퀵서비스 업계에는 이런 일이 없을까. 여기도 당연하게도 있다. 네이버의 투자를 받기도 한 퀵서비스 1위 플랫폼 ‘인성데이타’의 성장을 만든 핵심 비즈니스가 2010년 구축한 ‘공유망’이다. 공유망이란 같은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있는 퀵서비스 업체가 ‘주문’과 ‘배달기사’를 공유하는 시스템이다. 인성데이타는 일 퀵서비스 물동량의 40% 이상을 공유망으로 처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왜 굳이 주문과 배달기사를 공유할까. 한정된 시간에 더 많은 돈을 벌고 서비스 품질을 올리기 위해서다. 예를 들어 강북에서 10명의 퀵서비스 라이더 네트워크를 운영하고 있는 퀵서비스 업체가 있다고 하자. 이 업체의 콜센터로 신규 주문이 들어왔는데, 업체에 등록한 모든 퀵서비스 라이더가 배송업무를 나갔다. 혹은 픽업을 가기엔 도무지 효율이 안 나오는 송파구에서 픽업을 하는 주문건이라고 해보자. 

이 때 이 업체는 인성데이타의 ‘공유망’을 이용한다. 공유망에 수행하기 버거운 주문을 떨구면 인성데이타 프로그램을 쓰고 있는 퀵서비스 라이더(업계에선 이런 라이더를 ‘공유기사’라 부른다.)들에게 해당 주문이 노출돼 주문을 수행한다. 결국 퀵서비스 업체는 공유망을 통해 고객의 주문을 어떻게든 처리할 수 있어 좋다. 라이더는 더 많은 주문을 수행할 수 있어 좋다. 

인성데이타에 따르면 공유망은 개별 퀵서비스 업체 소속 기사수에 한계가 있고, 주문량 또한 지역마다 천차만별인 상황에서 기사와 주문수의 불균형을 맞추는 역할을 수행한다. 같은 프로그램을 쓰고 있는 퀵서비스 업체들이 품앗이 개념으로 주문과 퀵서비스 기사를 공유한다. 인성데이타의 공유망은 현재 퀵서비스 업계의 대세로 자리 잡힌 시스템이다.
●세상 어디에든 ‘공유 물류’

퀵서비스의 공유망과 유사한 시스템은 특수형태근로종사자가 서비스 공급자가 되는 생태계에서는 일반적으로 보인다. 그것을 지칭하는 이름만 조금씩 달라질 뿐이다. 대리운전업계에서는 ‘연합망’이라, 화물운송업계에서는 ‘정보망’이라고 불리는 시스템이다. 업체들은 이 네트워크를 통해 어떻게든 고객의 ‘주문’을 처리할 수 있고, 공급자들은 이 네트워크를 통해 누군가의 주문을 잡아 수행하고 부가수익을 얻을 수 있다.

몇 년 전 CJ대한통운 대리점을 운영하는 지인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엄기자님, 재밌는 이야기 하나 해드릴까요? 요즘 택배기사들이 부업으로 쿠팡플렉스를 뛴데요”

하긴 택배기사 입장에서 시간이 없고 물량이 터져 나오는 상황이 아니라면 굳이 본사가 건네주는 물량 처리만 고집할 이유는 없다. 어차피 화물차에 비어있는 공간은 있을 것이고, 어차피 쿠팡 물량이나 CJ대한통운 물량이나 같은 권역을 돈다. 쿠팡의 물량과 CJ대한통운의 물량이 동시에 도착하는 자택 또한 분명히 있을 것이다. 택배기사는 어차피 이동해야 하는 경로에 쿠팡플렉스의 물량으로 부가가치를 입혀서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

그림1. 쿠팡 로켓배송 물량을 배송하고 프레시백 회수 업무까지 하고 있던 ‘롯데글로벌로지스’ 택배기사를 현실 세계에서 만났다.

커넥터스

공유 물류를 거창하게 트렌드라 들이대기 한참 전부터 현장의 사람들은 공유하고 있었다. 그들 나름대로 돈을 더 버는 방법을 효율적으로 구상했다. 이렇게 본다면 공유 물류는 그렇게 새로운 트렌드가 아닐지 모른다. 원래부터 우리 물류는 공유하고 있었으니. 

물류학 교과서에서는 이런 걸 ‘물류 공동화’라고 부르더라. 아마 현장을 뛰는 사람들은 그런 용어를 쓰진 않을 것이고 별로 관심도 없을 것이다. 그냥 같은 시간을 투자하더라도 돈을 더 많이 버는 방법 중 하나로 인식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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