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성재고는 그 자체로 물류센터의 생산성 지표인 ‘출고량’을 떨어뜨린다. 여기 더해 악성재고가 놓여있는 공간을 활용했다면 훨씬 더 물류기업의 매출을 끌어올려 줄 잘 팔릴 ‘상품’의 신규 유입을 막는다. 잠재적인 미래 매출에도 악영향을 준다.
애초에 보관용 물류센터도 아닌 이커머스 물류센터를, 자의든 타의든 ‘보관용’처럼 쓰는 화주사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물류기업들은 오랫동안 골몰했다. 안타까운 것은 대부분의 중소 물류기업에게 있어 악성재고 처리를 위한 ‘명확한’ 솔루션은 아직까지 없었다는 거다.
물류기업은 화주사들에게 ‘갑’이 아니다. 철저한 을의 입장으로 악성재고에 대한 ‘장기보관 비용’을 물거나 ‘재고 폐기 비용’을 요구하기 어렵다. 물류기업에게 화주사는 매출을 만드는 고객이다. 화주사 입장에서 대체할 수 있는 경쟁 물류기업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물류기업이 재고에 대한 책임을 화주사에게 물었다가 이어질 수 있는 화주사의 이탈이 두렵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물류기업들은 악성재고 처리를 위해 ‘그저 열심히’ 하는 것이었다. 악성재고는 언제나 존재할 수 있고, 화주사에게 직접적으로 처리 부담을 넘기긴 어려우니 물류기업 스스로 그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다. 예컨대 악성재고가 존재하는 상황에서도 최대한 상품 보관 효율과 생산성을 끌어올릴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한다. 이커머스 물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한 3PL업체 대표의 이야기다.
“악성재고는 저희의 큰 고민 중 하나입니다. 사실 물류회사들은 모두 다 고민하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류센터 전체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악성재고를 최대한 줄여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우리는 화주사에게 악성재고를 처리할 수 있는 가이드를 전달하거나, 내부에서 최대한 압축적으로 상품을 보관하는 방식으로 관리를 체계화하고 있습니다”
●아마존은 어떻게 할까?
사실 악성 재고로 인한 공간 부족은 물류기업만의 이슈는 아니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아마존은 코로나19 기간 이커머스 수요는 폭발했고 FBA(Fulfillment By Amazon)를 이용하고자 하는 화주사는 줄을 섰다. 하지만 그들의 물량을 모두 넉넉하게 받을만한 공간은 물류센터 안에 없었다.
반면, 아마존은 물류회사와 달리 ‘흐름’의 주도권을 가지고 있었다. 판매자들에게 산발적인 소량 재고 입고를 요구했다. 판매자 입장에서 이런 아마존의 요청은 곤혹스러웠다. 그들 입장에선 아마존 물류센터에 한 번에 ‘많은 물량’을 넣고 싶은 게 당연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규모의 경제를 통해 물류비를 절감할 수 있다.
그런데 아마존은 ‘대량 상품 입고’를 허용하지 않았다. 산발적으로 들어오는 소규모 입고 요청으로 인해 판매자들은 추가 물류비를 투하했다. 아마존 물류센터로 곧바로 상품을 입고시키는 것이 아니라, 아마존이 아닌 현지 물류센터에 상품을 보관해두고 아마존 상품 보충을 위한 중간거점으로 사용하는 이들이 등장했다.
이런 아마존의 운영 행태로 인해 판매자들의 원성은 자자했다. 당연히 아마존 FBA를 이용하는 모든 판매자들이 상품을 잘 파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안 팔리는 판매자들은 ‘재고’에 대한 고민을 아마존에게서 떠넘겨 받았다. 결국 아마존의 물류 효율을 만들기 위해 희생되는 것은 판매자들이 됐다.
●아마존의 새로운 솔루션
아마존에게도 이런 사회적인 인식은 부담스러웠을 수 있다. ESG가 기업 가치를 측정하는 척도로 부상하고 있는 상황에서 판매자들의 원성이 들린다는 건 규제나 불매운동 같은 예기치 못한 리스크로 연결될 수 있다.
그 때문이었을까?. 아마존이 악성재고를 해결하는 ‘새로운’ 솔루션을 2022년 초 발표했다. 새로운 솔루션에는 ‘FBA 리퀴데이션(Liquidation, 청산)’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FBA 리퀴데이션은 쉽게 말해 판매자의 악성재고를 아마존이 ‘현금화’해주는 프로그램이다. 종전 아마존 물류센터에 보관된 상품 폐기나 회수를 위해선 판매자들이 아마존에 ‘돈’을 지불했다. 상품 품목당 적게는 0.25달러, 많게는 1.9달러의 수수료를 아마존에 내야했다.
반면, FBA 리퀴데이션을 이용한다면 판매자는 오히려 상품 판매가의 5~10% 가량의 돈을 받을 수 있다. 아마존이 해당 재고를 도매처에 판매함으로 얻은 수익을 판매자들에게 공유한다는 설명이다.
아마존이 FBA 리퀴데이션을 시작한 이유는 ‘판매자’와의 관계 때문으로 보인다. 한국 아마존글로벌셀링은 ‘FBA 리퀴데이션’의 장점을 아래와 같이 언급했다. 이는 모두 기존 상품을 팔지 못하고 재고가 체화된 판매자들의 원성과 맞물리는 요소들이고, 아마존이 스스로 ‘개선책’을 제시한 것이다.
아마존이 이야기하는 FBA 리퀴데이션의 장점
1) 도매 판매를 통해서 초과재고 및 처리금액 일부를 회수할 수 있다.
2) 추가 재고를 처리하지 않음으로 발생하는 FBA 재고보관 수수료를 절약할 수 있다.
3) 악성재고를 처리함으로 창고 가용공간을 늘리고 재고 퍼포먼스 지수(IDI)를 향상시킬 수 있다. 가용 공간을 활용하여 신규상품이나 판매량이 높은 베스트셀러를 추가 입고하는 방식으로 매출 전략을 짤 수 있다.
여기 더해 아마존이 언급하지 않은 숨은 의도를 추측할 수 있다. 첫째로 아마존은 판매자들의 악성재고를 최대한 순환시킴으로 아마존의 물류센터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사실 입점 판매자는 아마존에게 물류비를 지불하는 또 다른 고객이다. 아마존 입장에서도 악성재고가 쌓이는 것보다는 판매가 잘 돼야 더 많은 물류 수익을 얻을 수 있다. 때문에 아마존이 공식적인 장점으로 언급한 ‘신규상품’이나 판매량이 높은 ‘베스트셀러’를 악성재고가 잠겨있던 위치에 새로 보관한다는 건 판매자뿐만 아니라 아마존에게도 이득이다.
덩달아 아마존은 재고 판매로 추가적인 수익을 확보할 수 있다. 예컨대 20달러에 판매되고 있는 티셔츠가 악성재고로 아마존 물류센터에 잠겨 있다고 해보자. 판매자가 FBA 리퀴데이션을 이용하여 이 티셔츠를 처리한다면 상품건당 판매금액의 7.5%인 1.5달러를 아마존은 정산해준다.
아마존은 정산 이후 악성재고의 ‘처리 과정’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도매상’에게 판매한다고 이야기 했을 뿐이지, ‘얼마’에 상품을 넘기는지는 아마존만 알 수 있다. 그러니까 판매자들에게 1.5달러에 정산해주고 소유권을 이전받은 상품을 아마존이 3달러에 도매상에 판매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 차익은 그대로 아마존의 추가 이익이 될 수 있다.
아마존은 이미 그렇게 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다. 글로벌 17개국에 판매채널 마켓플레이스를 운영하고 있고, 해당 마켓플레이스에서는 특정 국가 고객이 어떤 상품 구매를 선호하는지 ‘데이터’를 확보하고 있다.
아마존은 국가별 상품 이동을 최적화할 수 있는 역량도 갖추고 있다. 아마존의 자체 물류망인 FBA가 닿는 국가는 전 세계 67개국에 달한다. 상품 배송까지 가장 유리한 거점에다가 재고를 재배치하고 최적화하는 것은 아마존의 일상이나 다름없다. 말인즉 아마존은 어떤 국가에서는 악성재고였던 물량을 다른 국가 물류센터로 이동시켜 ‘가치 있는 상품’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충분한 운영 역량을 갖추고 있다.
‘악성재고’는 재고를 보유한 모든 이들의 고민이다. 판매자들에게는 안 팔리기 때문에 고민이고, 물류업체에게는 생산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고민이다. 어디다 말도 못하는 ‘악성재고’가 지하에서 흐르는 상황. 재고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는 아마존의 방법에서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찾을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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