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필먼트는 이커머스 물류가 아니다
작성자 : 김철민 비욘드엑스 대표 2023.02.17 게시몇 년 전부터 물류업계에서 유행했고 이제 대중화된 키워드로 ‘풀필먼트(Fulfillment)’라는 것이 있다. 무엇인가 채우고 충족시킨다는 사전적인 의미는 차치하고, 풀필먼트는 흔히 ‘이커머스 물류’라고 해석해도 업계에서 의미가 통한다.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풀필먼트는 물류센터든 매장이든 주유소와 같은 전혀 의외의 공간이든, 어떤 특정 공간 안에서 고객 주문에 따라 발생하는 집품, 분류, 포장과 같은 물류 업무를 다뤘다. 예컨대 물류센터 상품 입고부터 택배 등 라스트마일 물류업체 출고까지. 풀필먼트는 그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프로세스 효율화에 매진했고, 비용 절감을 통한 원가 경쟁력 증대와 출고량으로 대표되는 생산성 향상을 목표했다. 하지만 최근의 풀필먼트는 물류센터를 넘어선 영역으로 다루는 범위를 확장하고 있다. 심지어 물류를 넘어선 이종영역까지 서비스를 아우르고 있다. 물류업이 제공하는 비용 절감과 생산성 향상이라는 본질적 가치는 이종 서비스가 결합이 되면서 부수적인 무엇인가가 됐다. 국내 이커머스 시장에서 양강 구도를 만든 쿠팡과 네이버가 그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쿠팡은 2020년 풀필먼트 서비스 ‘로켓그로스(당시 로켓제휴, 2021년 제트배송으로 리브랜딩)’를 시작했다. 쿠팡은 풀필먼트 서비스 론칭과 맞물려 그간 쿠팡이 매입하여 직접 유통하는 ‘자사’ 상품을 처리하는 데만 활용했던 물류망과 시스템을 쿠팡 마켓플레이스(아이템마켓)에 입점한 3자 판매자에게까지 개방했다. 3자 판매자는 로켓그로스를 통해 쿠팡의 물류를 빌려 쓰고, 이에 대한 비용을 지불한다. 로켓그로스가 통상 10%인 마켓플레이스 수수료보다 3배 이상 비싼 가격에 설정된 이유다. 여기까지만 보면 쿠팡의 풀필먼트 또한 ‘물류 서비스’를 제공하고 돈을 받는 여타 물류업체의 그것과 동일해 보인다. 하지만 쿠팡이 풀필먼트에서 강조하는 지점은 물류가 아니다. 전방의 고객이다. 실제 쿠팡에 따르면 로켓그로스 입점은 ‘매출 상승’을 동반한다. 쿠팡 입점 영업 담당자에 따르면 풀필먼트를 이용한다면 일반 쿠팡 마켓플레이스 입점 판매 대비 클릭수가 648% 상승하고, 매출은 평균 3배에서 많으면 12배까지 증가한다는 이야기를 강조한다. 즉, 쿠팡 풀필먼트는 비용 절감이 아닌 ‘매출 증대’에 강조점을 찍었다. 쿠팡이 이런 문법의 풀필먼트 영업이 가능한 이유는 고객 전방의 막강한 트래픽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900만명이 넘어갔다고 알려진 로켓와우 회원으로 대표되는 ‘충성고객’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로켓와우 회원들은 빠른 물류와 무제한 반품에 매료돼 멤버십에 가입했고, 이는 ‘로켓배송’ 필터 검색이라는 결과로 증명된다. 일반 마켓플레이스에 입점한 3자 판매자들은 쿠팡의 핵심고객인 로켓와우 회원들에게 도저히 닿을 수 없지만, 풀필먼트를 사용하는 판매자들은 다르다. 이 로켓배송 필터 검색 결과에 노출되기 때문이다. 판매자들은 더 높은 매출 증대를 위해서 30%대의 높은 수수료와 안 팔리고 남을 재고에 대한 위험을 감수한다. 네이버 역시 쿠팡의 문법을 적극 흡수하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네이버는 2021년 7월 풀필먼트 플랫폼 NFA(Naver Fulfillment Alliance)를 시작했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네이버의 풀필먼트는 보통 물류기업의 그것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네이버와 투자 및 지분교환으로 자본을 섞은 CJ대한통운, 두핸즈, 파스토, 아워박스, 위킵과 같은 업체의 물류 서비스의 가격을 플랫폼 안에서 ‘비교 견적’을 낼 수 있도록 연결해주는 정도에 그쳤다. 결국 네이버의 풀필먼트를 선택하는 화주사의 판단요인은 ‘낮은 물류 단가’였고, 이는 네이버 파트너사들 간의 저단가 경쟁으로 이어졌다. 네이버가 만족할만한 풀필먼트 사용 판매자의 증가세도 없었다.
네이버에 변화의 신호가 보인 것은 2022년 4월이다. 네이버쇼핑 검색 결과에 ‘내일도착’이라는 필터를 추가했다. 여기 쿠팡의 로켓배송과 같은 오늘 자정까지 주문하면 내일 배송이 가능한 CJ대한통운의 이커머스 물류 서비스를 연결했다. 내일도착 필터는 사실상 쿠팡의 ‘로켓배송’ 필터와 같은 기능을 한다. 빠른 배송을 기대하는 소비자들의 더 많은 트래픽을 만드는 역할을 하고, 이를 네이버는 풀필먼트를 영업하는 무기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여기 네이버는 또 한 번의 변화를 시도했다. 2022년 12월 ‘N도착보장’이라는 새로운 솔루션을 출시한 것이다. N도착보장 솔루션은 빠른 배송 서비스임을 강조하는 필터가 걸린다는 점에서 네이버가 앞서 시작했던 ‘내일도착’과 유사하다. 차이가 있다면 단순히 검색 필터만 추가됐던 내일도착과 다르게 네이버가 도착 예정일을 보장하고, 이 시점까지 상품이 배송되지 않으면 네이버가 책임지고 소비자에게 일정 부분을 보상한다는 점이다. 더불어 풀필먼트 영업에 ‘매출 증대’를 강조하는 네이버의 모습은 한층 본격화됐다. 네이버는 그들이 갖춘 쇼핑윈도우와 같은 다양한 온라인 전시 공간에 도착보장 상품을 노출한다고 강조했다. ‘도착보장관’과 같은 도착보장 상품 데이터베이스만 모아놓는 전용관을 마련한다고도 했다. 본격적인 쿠팡식 풀필먼트가 네이버에 구현되는 모습이다. 하지만 여전히 도착보장은 쿠팡과 비교하면 빠른 배송의 상품 구색과 속도가 뒤떨어지는 하위호환 서비스처럼 보일 수 있다. 여기 네이버는 차별화 요소를 하나 더 준비했으니 도착보장 솔루션을 이용하는 판매자에 대한 수요예측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이다. 네이버는 도착보장 솔루션을 이용하는 판매자들에게 판매량 예측과 분석 기술을 제공한다. 향후 수요예측뿐만 아니라 물류 데이터를 활용한 더 많은 솔루션 라인업을 강화하여 판매자들에게 제공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판매자들이 D2C(Direct to Customer)를 강화하는 솔루션 파트너로 네이버를 찾을 수 있도록 노력한다고 했다. 쿠팡과 네이버가 만든 풀필먼트 서비스는 ‘물류’를 바탕으로 하지만 다른 영역의 가치가 녹아들었다. 기본적으로 ‘매출’을 일으키는 풀필먼트를 강조하고 있으며, 이는 두 업체가 고객 전방의 거대한 노출 권력을 갖추고 있는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만들 수 있는 가치다. 물류만 운영하는 3자 물류업체들은 만들기 어려운 문법이다. 여기 더해 네이버는 풀필먼트 서비스 안에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공급망 최적화 솔루션을 녹였다. 이 또한 물류 역량만 갖춘 업체는 만들 수 없다. 고객 전방의 수요 데이터, 나아가 물류의 흐름까지 파악하고 있는 기술 역량이 있는 업체만이 녹여낼 수 있는 서비스다. 실제 네이버는 풀필먼트 플랫폼을 운영하지만 물류로 돈을 벌지 않는다. 솔루션 사용에 따른 수수료로 돈을 번다. 글을 시작하며 풀필먼트는 ‘이커머스 물류’라 해석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최근의 풀필먼트는 이커머스 물류를 넘어선 영역으로 경계를 흩트리고 있다. 고객 전방 노출 구좌를 활용한 마케팅의 영역과 데이터를 활용한 상품 조달을 최적화하는 형태로 풀필먼트가 다루는 범위를 물류센터 밖으로 확장시키고 있다. 이커머스 물류를 넘어선 종합 솔루션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풀필먼트는 이커머스 물류지만, 이커머스 물류가 아니다. 이는 저단가 경쟁이라는 숙명을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서비스의 가치를 증명하지 못해 애를 먹는 물류기업들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참고할 방향이기도 하다.

그림1. 풀필먼트 자동화
LG CNS
본 사이트(LoTIS. www.lotis.or.kr)의 콘텐츠는 무단 복제, 전송, 배포 기타 저작권법에 위반되는 방법으로 사용할 경우 저작권법 제 136조에 따라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핵심단어 | 풀필먼트 이커머스 물류쿠팡네이버 |
자료출처 | |
첨부파일 |
집필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