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안 우리는 물류 서비스를 선택할 수 없었다. 우리 눈에 보이는 물류란 플랫폼, 판매자가 설정한 배송료 정도가 전부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고객은 같은 상품, 같은 가격이라면 배송료가 저렴한 상품을 구매할 것이고 최소주문금액에 따른 배송료 할인이 있다면 그에 맞춰 장바구니를 채울 것이다. 그 물류를 CJ대한통운, 한진, 롯데택배 중 누가 배송해줄지는 관심 밖의 일이다. 사실 그 선택권 또한 고객에겐 없다. 플랫폼이나 판매자가 어느 택배사와 계약하느냐의 문제다.
물론 쿠팡이 촉발한 배송 전쟁으로 택배 이상의 ‘빠른 물류’ 서비스가 눈에 띄게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컬리는 ‘샛별배송’을 통해 새벽배송을 유행시켰고 CJ올리브영은 ‘오늘드림’을 통해 3시간 단위 배송 서비스를 확장했다. 우아한형제들의 B마트는 30분~1시간 이내 ‘즉시배송’ 카테고리를 늘리고 있다. 그 이유는 명백하게도 ‘빠른 배송’이 고객이 플랫폼을 선택하는 기준이자 경쟁사와 차별화 요인이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여기서도 고객의 ‘선택권’은 실종됐다. 그저 우리는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우리가 원하는 물류 서비스를 갖춘 플랫폼을 취사선택할 뿐이다. 예를 들어 내일 회사 행사에 필요한 명패가 필요하다면 쿠팡의 로켓배송을 이용하고 내일 새벽에 먹을 아침 식사거리가 필요하다면 컬리에서 밀키트를 구매한다. 혹여 지금 당장 휴대전화 충전기가 필요하다면 B마트를 이용하는 식이다.
‘빠른 물류’ 뿐일까. 더 나아가 생각해본다면 구매하는 상품의 특성에 따라서도 고객에게 필요한 물류 서비스는 바뀔 수 있다. 만약 값비싼 명품을 구매한다면 철저하게 가품을 검증하는 검수 서비스가 필요할 수 있다. 이를 누군가에게 선물로 준다면 그에 맞는 선물포장과 메시지 카드가 동봉되길 원할 수 있다. 누군가는 이러한 서비스에 기꺼이 추가적인 비용 지불을 감수할 수 있을 것이다.
앞서 이야기한 모든 ‘특화된’ 물류는 현재 대한민국 어디선가 누군가에 의해서 제공되는 현실화된 서비스다. 하지만 이러한 특화된 물류 서비스를 모두 하나의 그릇에 담아서 고객에게 ‘선택할 수 있도록’ 제시해주는 플랫폼이 있는가 생각해보면 떠오르는 곳이 없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여러 필요한 물류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플랫폼을 찾고 각각의 플랫폼에서 장바구니에 상품을 담아 개별 결제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한다. 더군다나 일정 주문금액을 넘으면 무료 배송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 이커머스 환경을 고려한다면 서로 다른 플랫폼 이용에 따른 중복된 물류비까지 부담해야 한다.
만약 하나의 플랫폼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물류 서비스의 선택이 가능하다면 어떨까? 같은 밀키트를 구매하더라도 식사 시간에 맞춰서 저녁배송, 새벽배송, 주말배송을 선택할 수 있다면 어떨까? 설치가 필요한 가구라면 내가 원하는 시간대에 배송 받을 수 있는 옵션을 선택할 수 있다면 어떨까? 가품이 불안하다면 추가적인 검수 서비스를 요청할 수 있다면 어떨까? 인플레이션의 시대라고 불리는 이때 조금 느린 물류 서비스를 이용하면 상품 가격을 할인해주는 옵션을 추가한다면 어떨까?
왜 온디맨드 물류는 존재하지 않았을까?
물론 현실적으로 이러한 물류 서비스 구축이 어려웠던 여러 이유는 있었다. 그건 역설적으로 한국의 물류 서비스가 너무나 잘 돼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이커머스 업체라면 누구나 사용하는 ‘택배’는 전 세계 어디를 보더라도 찾을 수 없는 가격과 서비스 품질을 자랑한다. 팬데믹과 함께 많이 올랐다고 하지만 사업자 기준 1,000~2,000원대이고 고객 기준 2,500~3,000원대에 출고 시점 기준 전국 D+1일 배송이 가능한 서비스가 전 세계 어디 있는가 생각한다면 한국을 제외하고는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한국통합물류협회에 따르면 2021년 기준 국내 택배 평균단가는 2,366원이다. 팬데믹 이후 불확실성의 증가로 많이 흔들렸지만 그 이전까지 한국의 택배 서비스는 오늘 출고의 익일배송률은 3대 택배사(CJ대한통운, 한진, 롯데글로벌로지스) 모두 90% 이상 관리될 정도의 서비스 품질을 유지했다. 일본의 택배가 통상 700엔이고 미국의 택배가 8달러 선에 단가가 형성된 것과 비교한다면 굉장히 저렴한데다 품질까지 덧붙여진 셈이다.
그러다 보니 택배를 능가하는 서비스에 대한 기업들의 도전이 쉽게 나오지 못했다. ‘당일배송’ 영역에서 택배보다 빠른 서비스를 만들어낼 수는 있었지만 ‘가성비’ 측면에서 그만한 가격을 내고 택배의 D+1일 배송을 대체할 만큼의 규모가 나오기는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컨대 한국교통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대표적인 당일배송 서비스인 퀵서비스만 하더라도 2018년 기준 1만 1,913원의 평균단가가 형성됐다. 이는 당시 평균 택배단가(2,229원)와 비교해 5.3배 이상 비싼 수준이다. 샘플 운송으로 대표되는 긴급 배송 수요를 어느 정도 퀵서비스가 충당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시장 규모 자체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이커머스 판매자들 또한 오랫동안 택배 이외의 물류 서비스를 딱히 고려하지 않았다. 물류 측면의 전략이라고 해봤자 더 큰 판매 규모를 바탕으로 더 저렴한 건당 택배 단가를 계약하는 것 정도였고 그렇게 만들어낸 원가 측면의 우위를 ‘무료 배송’이라는 형태로 판매가에 녹여서 보여주는 것이 전부였다. 애초에 물류의 선택지가 허브앤스포크 기반의 익일배송 ‘택배’뿐이니 온디맨드 물류까지 나아가는 선택지를 만들 수 있을 리 만무했다.
하지만 여러 물류업체들의 서비스를 연결하는 ‘플랫폼’의 등장과 함께 빠른 물류를 넘어 고객이 취사 선택할 수 있는 물류 서비스 ‘온디맨드 물류(Logistics On-Demand)’의 가능성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한다. 앞으로 몇 차례 연재를 통해서 물류 영역에서 ‘온디맨드’를 구축하고 있는 서비스들을 소개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