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을 막을 것인가, 흐름을 유지할 것인가: 팜오일 위기가 보여준 공급망 정책의 선택 (팜오일 2편)
작성자 : 이종태 부산대학교 국제전문대학원 겸임교수 2026.09.30 게시같은 위기지만, 보호해야 할 대상은 차이 (양국의 딜레마)
2022년 팜오일 가격 급등은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에 동일한 기회와 부담을 동시에 안겼다. 두 나라는 모두 세계적인 팜오일 생산·수출국이었기 때문에 국제가격 상승은 수출기업과 생산자의 수익을 높일 수 있었다. 그러나 같은 가격상승은 국내 소비자에게는 생활비 부담으로 돌아왔다. 인도네시아에서 팜오일은 단순한 수출상품이 아니다. 식용유는 국민생활과 직접 연결된 기초재이기 때문에 가격상승은 곧 생활물가 문제로 이어졌다. 당시 조사에서도 약 80%의 응답자가 정부가 소비재 가격을 합리적이고 안정적인 수준에서 유지해야 한다고 답할 정도로 가격안정 요구가 강했다. 한편, 말레이시아는 조금 다른 이해관계 구조를 갖고 있었다. 팜오일 수출은 국가경제뿐 아니라 FELDA를 비롯한 농촌 생산자들의 소득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수출을 막으면 국제가격 상승으로 발생한 이익이 생산자에게 전달되지 못하고, 이는 농촌경제와 정치적 이해관계에도 영향을 줄 수 있었다. 같은 가격충격을 받았지만 두 정부가 먼저 보호하려 한 대상이 달랐던 것이다. 결국 위기 상황에서 무역정책의 질문은 단순히 “수출을 허용할 것인가”가 아니다. 가격이 급등했을 때 누구의 소득을 보호하고, 그 비용을 누구에게 부담시킬 것인가가 더 근본적인 문제다.
그림1. 인도네시아: 소비자·생활물가 압력
Getty Images, Palm Oil Farmers’ Protest in Jakarta, 2022.
그림2. 말레이시아 농가의 팜오일 생산현장
Pulitzer Center, Smallholder Palm Oil Harvest in Perak, Malaysia.
인도네시아는 물량 통제를, 관련 산업의 공급망은 그 충격에 대응할 필요
인도네시아는 먼저 DMO(Domestic Market Obligation)를 통해 생산량의 일정 비율을 국내시장에 공급하도록 했고 여기에 가격상한과 보조금, 수출제한을 추가했다. 하지만 국제가격과 국내 통제가격 간 격차가 커지면서 공급자의 유인은 왜곡됐고, 국내 식용유 부족도 쉽게 해소되지 않았다. 결국 정부는 2022년 4월 28일부터 팜오일 수출을 일시적으로 제한했고, 이 조치는 5월 23일 해제됐다. 이러한 정책은 기업 단위에서 보면 단순한 수출감소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대표적인 통합 팜오일 기업인 Musim Mas의 Dumai 거점을 보면, 2022년 4분기 기준 해당 CPO 처리거점은 94개 공급 밀과 연결돼 있었고, 공급물량의 92.73%가 직접 거래하는 제3자 밀에서 들어왔다. 즉 하나의 정유·수출 거점 뒤에 수십 개의 생산·가공업체와 농가가 연결돼 있는 구조였다. Musim Mas가 공개한 공급망 자료를 보면 이런 연결성은 더 분명하다. 같은 Dumai 지역의 Lubuk Gaung 거점은 2022년 4분기 106개의 CPO 공급 밀과 연결돼 있었고, 이 가운데 상당 부분이 외부 공급자였다. 이는 수출규제의 충격이 항만이나 기업 본사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정유·저장·선적이 지연되면 기업은 원료 투입량을 조정해야 하고, 그 영향은 다시 공급선과 농가로 거슬러 올라간다. Musim Mas가 설명하는 팜오일 물류구조도 이 점을 뒷받침한다. FFB는 농장에서 밀로 이동해 CPO로 가공되고, 저장탱크를 거쳐 탱커나 선박에 실려 정유시설과 해외시장으로 이동한다. 팜오일 공급망은 여러 독립된 거래가 아니라 하나의 연속적인 물류 네트워크다. 따라서 수출을 막는다는 것은 단순히 해외판매를 줄이는 조치가 아니다. 기업의 조달·가공·저장·선적계획 전체를 동시에 조정하도록 만드는 정책이다.
그림3. 수출규제가 기업 공급망을 통해 상류로 전달되는 과정
Musim Mas, How Is Palm Oil Transported?
말레이시아는 수출을 유지했고, FGV의 물류망은 높은 가격을 공급망 안으로 전가했다
말레이시아는 수출 흐름을 차단하는 대신, 가격상승으로 발생한 이익 일부를 세금으로 회수하고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누진적 수출관세와 Windfall Profit Levy를 유지하면서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Cooking Oil Stabilization Scheme을 운영했다. 이러한 정책의 결과를 기업 차원에서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FGV Holdings다. FGV는 농장과 밀뿐 아니라 식용유·바이오디젤·물류·저장 부문까지 연결된 통합기업이다. 2022년 4분기 기준 FGV가 처리한 FFB 가운데 44%는 FELDA 정착농가에서 조달됐고, 28%는 자체 생산, 나머지 28%는 제3자로부터 공급됐다. 소농 등으로부터 구매한 FFB의 연간 구매액도 2021년 RM 83.8억에서 2022년 RM 105.6억으로 증가했다. FGV Holdings 같은 해 FGV는 매출이 전년 대비 31% 증가한 RM 255.6억을 기록했다. 회사는 실적 개선 요인으로 높은 CPO 가격뿐 아니라 Logistics Sector의 높은 처리량과 운송톤수 증가를 함께 제시했다. 2022년 4분기에는 벌킹 처리량이 3%, 운송물량이 15% 증가했다. 이 사례의 의미는 단순히 “말레이시아 기업이 돈을 더 벌었다”는 데 있지 않다. 국제시장과의 연결이 유지되면서 높은 가격과 수요가 농가→가공→저장→운송→수출의 각 단계로 전달됐다는 점이 중요하다. FGV의 현재 물류자산 구조도 이러한 특징을 보여준다. FGV는 대형 액체벌크 저장시설과 여러 터미널을 운영하며, 팜오일·바이오디젤·올레오케미컬 등 다양한 액체화물을 취급하고 있다. 공식 자료에 따르면 현재 12개의 액체터미널과 대규모 저장능력을 갖춘 물류망을 운영하고 있다. 즉, 말레이시아의 ‘흐름 유지’는 추상적인 무역정책이 아니라, 실제로는 이러한 기업의 저장·운송·벌킹 능력을 통해 구현된다.
그림4. FGV의 대형 액체벌크 저장터미널 및 FGV 팜오일 네트워크
FGV Holdings, Logistics & Support Division
식탁과 연료탱크가 같은 팜오일을 놓고 경쟁했다
인도네시아의 식용유 문제를 수출 증가만으로 설명하면 중요한 변수를 하나 놓치게 된다. 팜오일이 식품산업뿐 아니라 에너지산업의 원료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인도네시아는 2020년부터 경유에 바이오디젤 30%를 혼합하는 B30 정책을 시행했다. 2022년 정부가 배정한 바이오디젤 물량은 약 1,015만 kL에 달했다. 이는 에너지전환 정책이 팜오일 수요를 구조적으로 늘리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문제는 식용유와 바이오디젤이 같은 CPO를 원료로 사용한다는 점이다. 식용유 가격을 낮추려는 정책은 CPO의 국내 식용유 공급을 늘리려 했지만, B30 정책은 동시에 에너지 부문의 CPO 수요를 확대하고 있었다. 당시 식용유용 CPO와 바이오디젤용 CPO의 가격체계까지 달랐기 때문에 생산자에게 서로 다른 경제적 유인이 발생했다. 결국 하나의 원료를 놓고 식량정책과 에너지정책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수요를 끌어당긴 셈이다. 이 문제는 팜오일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옥수수는 식량과 바이오에탄올, 대두는 식품·사료와 바이오디젤 사이에서 경쟁한다. 탄소중립 정책이 확대될수록 이러한 food-versus-fuel 문제는 오히려 커질 수 있다. 따라서 원자재 공급망을 관리할 때는 “어느 국가에서 얼마나 생산하는가”만 볼 것이 아니라, 하나의 원료를 동시에 요구하는 산업이 몇 개인가까지 파악해야 한다.
보호의 비용은 사라지지 않고 다른 주체에게 이동한다
인도네시아의 수출금지는 국내 소비자를 보호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한 집단의 가격부담을 낮춘다고 해서 경제 전체의 비용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수출 차단 이후 국내 재고가 증가하면서 저장·가공부문의 부담이 커졌고, 결국 원료인 FFB 가격이 일부 지역에서 약 60% 하락했다. 즉 소비자 가격을 안정시키려는 정책의 비용 일부가 생산자에게 이전됐다. Musim Mas와 같은 기업 사례를 보면 왜 이러한 비용이 빠르게 상류로 이동하는지 이해하기 쉽다. 하나의 정유·수출거점이 수십 개의 외부 공급 밀과 연결돼 있기 때문에 물량조정은 곧 공급자 전체의 판매기회와 가격에 영향을 준다. 말레이시아 역시 모든 집단을 보호한 것은 아니다. 수출을 유지함으로써 생산자와 수출기업은 국제가격 상승의 혜택을 받을 수 있었지만, 저소득층 보조 대상이 아닌 소비자는 높은 국제가격의 일부를 부담해야 했다. 결국 두 나라는 비용을 없앤 것이 아니라 비용의 부담자를 다르게 선택한 것에 가깝다. 인도네시아는 소비자의 부담 일부를 생산자와 공급망 상류로 이동시켰고, 말레이시아는 생산자와 수출흐름을 유지하면서 정부재정과 일부 소비자가 가격상승의 비용을 나누는 구조를 선택했다. 이 점에서 무역정책은 단순한 국경정책이 아니다. 무역정책은 상품의 이동을 조정하는 동시에, 국내에서 충격의 비용을 누구에게 배분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분배정책이기도 하다.
그림5. 팜오일 가격 충격비용 비교
저자작성(GAPKI 참고)
물류에 대체경로가 필요하듯 정책에도 대체수단이 필요하다
2022년 팜오일 위기를 단순히 “말레이시아가 인도네시아보다 더 나은 정책을 선택했다”고 정리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수출금지는 빠르고 가시적인 정책수단이다. 국내에 더 많은 물량을 남길 수 있고,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다는 신호도 즉각 전달된다. 그러나 장기간 유지되면 계약이행, 재고, 저장시설, 농가소득에 부담을 줄 수 있다. 반대로 수출을 유지하면서 세금과 보조금으로 충격을 흡수하는 방식은 국제물류 흐름을 유지할 수 있지만, 높은 행정역량을 요구한다. 누가 초과이익을 얻는지 파악해야 하고, 지원대상을 정확히 구분해야 하며, 필요한 재정을 조달하고 실제 보조금을 전달할 시스템도 있어야 한다. 결국 두 정책의 차이는 단순한 개방과 보호의 차이가 아니다. 인도네시아는 물량 자체를 통제하는 직접적 수단을 선택했고, 말레이시아는 물류 흐름을 유지한 채 가격과 소득의 충격을 재분배하는 간접적 수단을 사용했다. 여기에서 공급망 회복력의 또 다른 차원이 나타난다. 물류에는 대체항만과 대체선복이 필요하듯, 정책에도 대체수단이 필요하다. 수출금지 하나만 사용할 수 있는 정부와, 비축·세제·표적보조·수입조정·시장감시 등 여러 정책수단을 조합할 수 있는 정부의 위기대응 능력은 다를 수밖에 없다. 즉 공급망의 선택권은 물류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정책에도 선택권이 있어야 한다.
그림6. 공급망 회복력의 두 축: 물류적 선택권과 정책적 선택권
저자구성
시사점: 한국의 원자재 공급망, 공급선보다 ‘대응수단’을 함께 다변화해야 한다
팜오일 사례가 한국에 주는 교훈을 단순히 수입선을 늘려야 한다는 말로 끝내서는 부족하다. 한국은 에너지, 광물, 곡물, 사료원료 등 주요 원자재의 상당 부분을 해외와 해상운송에 의존한다. 공급국을 복수화하고 특정 국가 의존도를 낮추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공급국을 늘리는 것만으로 위기 대응력이 완성되지는 않는다. 실제 위기에서는 한 국가의 수출제한이 가격과 물동량을 동시에 변화시키고, 다른 공급국의 항만·저장시설·선복이 얼마나 여유가 있는지에 따라 대체조달의 실행 가능성이 달라진다. 1차적으로는 물류의 대체경로가 준비돼 있어야 한다. 동시에 정부도 다양한 정책수단을 준비해야 한다. 원자재 가격이 급등할 때 곧바로 가격통제나 수출입 제한에 의존하기보다, 비축물량 방출, 관세 조정, 취약계층 대상 표적지원, 생산자 지원, 긴급조달, 물류비 지원 등 여러 수단을 조합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공급망 다변화의 의미도 넓게 볼 필요가 있다. 공급망의 다변화는 공급국을 늘리는 것만이 아니라, 사용할 수 있는 물류경로와 정책수단을 함께 늘리는 것이다. 기업 차원에서는 생산국·항만·선박·저장시설의 대체 가능성을 점검하고, 정부 차원에서는 가격과 소득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다양한 정책도구를 준비해야 한다. 2022년 팜오일 시장이 보여준 것은 어느 한 정책이 항상 옳다는 것이 아니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는 같은 충격에 직면했지만 서로 다른 경제구조와 이해관계, 제도적 역량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대응했다. 결국 위기에 강한 공급망은 물건이 끊기지 않는 공급망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물류의 흐름을 유지하면서도 충격의 비용이 특정 소비자나 생산자에게 집중되지 않도록 흡수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대체 공급국과 항만을 확보하는 ‘물류적 선택권’과, 수출통제·비축·세제·보조금 등을 조합할 수 있는 ‘정책적 선택권’이 함께 필요하다. 이 두 가지 선택권이 동시에 준비될 때 공급망 회복력은 단순한 비상대응을 넘어 실제 운영능력으로 작동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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